BanG Dream!

해바라기의 약속

뱅드림 미사카논

카논이 일본을 떠난다. 3학년은 졸업을 하고 그 밑은 진급을 하는 시기였다. 졸업생이 떠난 교정이 쓸쓸하지만 새로운 시작에 들뜨는 겨울날.

카논이 악의 무리에 납치된 거라면, 원하지 않는데 억지로 떠나는 거라면 기적처럼 구해낼 수 있을 것이다. 헬로해피월드는 그런 곳이니까. 삶의 사건들은 동화 속 이야기처럼 선명하지 않다. 카논은 진학하고 싶은 대학이 외국에 있다고 했다. 일단 지원하고 어떻게 될지 몰랐는데 합격하게 됐다고 했다. 미리 말을 하지 못해 미안하다고도.

축하해요, 라고 미사키는 대답했다.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었다.

카논의 출국일이 가까워지고 밴드 맴버들과의 소란스러운 송별 파티도 끝났을 때였다. 카논은 잠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미사키를 불러냈다.

“해바라기는 이름이 참 예쁜 꽃이라고 생각했어.”

지난 봄 함께 심었던 학교 화단의 해바라기는 가을에 단단한 열매를 맺어내고는 시들어 죽었다. 한해살이풀이라고 했다. 꽃의 수명을 알게 된 후 그 화단에 물을 줄 때면 미사키는 떠올리곤 했다. 해바라기가 시들면 학교를 떠날 3학년들, 그리고 카논에 대해.

“우리가 키웠던 해바라기 있잖아. 씨를 몇 개 받아놨거든.”

가을에 화단을 바라봤던 기억이 났다. 해바라기는 튼튼했던 줄기를 푹 숙인 채 잘익은 씨를 내밀고 있었다. 빽빽이 박힌 씨앗들 중 몇 개가 사라진다고 해서 눈에 띄지는 않는다.

“미사키쨩한테 주고 싶었어.”

카논은 담담한 얼굴로 환하게 웃었다.

“응, 고마워요. 카논 씨. 잘 키울게요.”

미사키는 조금 목이 메인 채 대답했다. 화분의 묵직하고 차가운 감촉이 손에 가득 찼다.

***

고등학교의 마지막 겨울 방학이 끝나고 봄이 되었다. 날이 따뜻해지기 시작할 무렵 화분에 물을 주고 햇빛이 잘 드는 곳에 놓았지만 아직 싹이 날 기미는 없었다. 창가에 앉아 화분을 지켜보던 미사키는 메신저를 열고 안부를 물었다.

‘거기는 어때요, 카논 씨?’

‘응, 한동안 적응하느라 정신 없었지만 이젠 괜찮아진 거 같아. 대학 생활도 즐겁고. 미사키쨩은?’

잠시 뒤 울린 알림에 휴대전화를 보자 해파리 이모티콘과 함께 카논의 답장이 도착해 있었다.

‘나쁘지 않아요. 카오루 씨는 바빠서 자주 못 보지만 코코로랑 하구미는 여전하고. 어제도 코코로가 점심시간에 신나서 날뛰는 바람에 신입생들이 엄청 놀랐어요. 카논 씨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쓰게 웃으며 자판을 치던 미사키는 마지막 문장을 지웠다. 곧바로 읽음 표시가 떴지만 새 메시지가 뜨기까지는 조금 걸렸다.

‘다들 보고싶다.’

미사키는 축 늘어진 해파리를 바라보며 순간 멍하게 있었다. 이윽고 허둥지둥 저도요, 라고 보내려 했지만 카논이 먼저였다.

‘화분은 잘 있어?’

‘아 아직...싹이 안 났어요. 물은 주고 있는데 좀 늦네요.’

소득 없는 보고를 올리는 것 같아 머쓱했다. 내리고 있던 시선을 들자 화분을 비추는 햇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미사키쨩, 그거 알아? 새로 사귄 친구가 식물을 좋아해서 알려줬거든.‘

말라 있는 흙을 보며 물이라도 더 줘야하나 하고 있는데, 카논의 메시지가 왔다. 이번에는 아무 이모티콘도 덧붙이지 않은 채였다.

‘해바라기는 꽃을 피우고 나면 더 이상 해를 바라보지 않는대.’

***

날씨가 부쩍 더워졌다. 옷장에 춘추복을 집어넣고 하복을 꺼내던 미사키는 문득 화분에 다가갔다. 줄기를 세운 해바라기에 작은 꽃봉오리가 영글어 있었다. 미사키는 반가운 마음에 화분을 들고 베란다로 나갔다. 방 안에 두는 것보다는 햇빛을 더 잘 받을 수 있을 터였다. 학교 화단에서만큼 잘 자라진 못하겠지만. 해가 길어진 덕에 아직 창밖은 밝아 여름이 다가오는 기색이 완연했다. 해바라기가 꽃잎을 펼치는 계절이 오고 있었다.

지난 여름 카논과 함께 마침내 꽃을 피운 해바라기를 보던 날을 기억한다. 여름밤에 뒤섞인 불꽃놀이의 추억도. 떠들썩하고 순식간에 지나가버린 여름이었다. 갑작스럽게 밴드 활동에 말려든 후 모든 순간이 그랬다. 우리는 화려하게 빛나지 않는 자그마한 불꽃. 수면 위로 흔들리던 불꽃은 아름다웠다. 큰 불꽃도 작은 불꽃도 모두를 미소 짓게 만든다는 사실을 안다. 해바라기가 핀 화단은 화사해서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활짝 핀 노란 꽃은 태양을 닮아 있었다. 햇빛을 머금은 것처럼.

어둠에 익숙해진 눈은 빛을 받아들였을 때 고통을 느끼지. 너무 눈부신 빛은 무서우니까. 도망치는 일은 내가 가장 잘했던 것. 햇빛을 똑바로 바라볼 줄 아는 해바라기는 당신을 닮았다고 생각했어.

돌이켜보면 헬로해피월드로 지낸 시간들은 찬란한 햇빛으로 물들어있었다. 빛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웃는 얼굴로 가득해질 수 있는 세상은 아름답다고, 쓴웃음을 지으며 믿을 수 있게 된 것은.

화분은 늦게 싹이 텄던 게 무색하게 제법 보기 좋게 자라 있었다. 미사키는 휴대전화를 꺼내 사진을 찍고는 갤러리로 들어갔다. 낯선 풍경의 사진 몇 장이 눈에 띄었다. 얼마 전 카논이 보내 준 사진이었다. 캠퍼스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 속 카논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미사키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 짓고는 방금 찍은 사진들을 카논에게 보냈다. 아직 채 여물지 않은 꽃봉오리는 싱그러웠다. 가을이 되면 해바라기는 다시 시들어버릴 것이다. 한 가득 열매 맺은 씨앗을 남긴 채.

알고 있었다. 카논이 건네 준 화분의 의미. 우리에게 왜 이 해바라기가 특별한지를.

그렇다면 카논 씨, 약속할게요. 선물해준 마음을 지켜나가겠다고. 언젠가 당신이 돌아오면 보여줄 수 있도록. 당신을 닮은, 우리를 닮은 이 꽃을.

자급자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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