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nG Dream!

해가 진 자리

뱅드림 미사카논

미사키는 카페에 앉아 토익 문제집을 보고 있었다. 문제를 풀다 목이 뻐근해져 고개를 들었는데 어딘가 낯익은 인영이 시야에 잡혔다. 막 음료를 받아와 앉을 자리를 찾는 정장 차림의 여성이 누구인지를 깨닫고 황급히 놀라 시선을 돌리려고 했던 그때, 눈을 마주쳤다. 상대는 눈이 동그래지더니 미사키 쪽으로 다가왔다.


“미사키....쨩? 맞지?”


카논의 포근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고개를 갸웃거리자 부드러운 물빛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갑자기 잊고 지냈던 모든 기억들이 카논과 함께 눈앞에 들이닥친 것 같은 감각에 미사키는 아득해졌다.


“오랜만이야. 어떻게 지냈어?”


미사키는 동요를 숨긴 채 얼버무리듯 웃으며 대답했다.


“응, 카논 씨. 오랜만이에요.”


두 사람은 간단하게 안부를 물었다. 미사키는 대학 졸업반, 카논은 졸업 후 막 회사에 신입으로 들어간 참이라고 했다. 미사키는 카논을 곧바로 알아보지 못했던 게 고등학교 시절보다 부쩍 성숙해진 분위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향수를 뿌렸는지 카논에게서 제비꽃 향이 물씬 풍겼다.


“봉사 동아리야. 친구들이랑 밴드 비슷한 걸 만들어서 공연 다니고 있거든.”


카논은 드럼을 계속하고 있다고 했다. 미사키는 그날 이후 디제잉을 하지 않았다. 아르바이트를 찾을 때도 인형 옷을 입어야하는 일은 지원하지 않았다. 물감이 덕지덕지 칠해지다 색을 잃은 세상은 단단한 회색빛을 띠고 있었다.


헬로해피월드가 그 이름다운 행보를 충실히 이어가던 어느 날, 코코로가 죽었다. 갑작스러운 사고 소식을 듣고 달려간 장례식장의 영정 사진을 보고서야 미사키는 실감했다. 인간의 육신을 뒤집어쓰고 있는 이상 누구도 죽음은 피해갈 수 없다. 십자가를 지고 죽은 예수는 부활해 신의 권능을 증명했다고 한다. 죽은 사람은 되살아나지 않는다. 제 아무리 츠루마키 코코로라 할지라도.


“다들 바빠서 힘들지만, 그래도 좋아. 드럼을 치는 건 즐겁고...”


환상의 세계로 내던져졌던 소녀는 다시 꿈에서 깨듯 현실에 남겨졌다. 불 꺼진 놀이동산 속에서도 카논은 젖은 눈으로 웃으며 말했다. 이젠 우리가, 세상을 웃는 얼굴로 만들어야지. 햇빛을 받은 카논의 눈동자가 보랏빛으로 빛났다. 미사키는 그 눈을 똑바로 마주볼 수 없었다. 시선을 돌리고는 주억거렸다. 난 못해요. 난 카논 씨만큼 강하지 않으니까. 토해내듯 말을 내뱉으며 미사키는 카논의 곁에 있을 핑계를 지워냈음을 알았다.


“사람들을 웃는 얼굴로 만들고 싶으니까.”


카논이 빙긋 웃었다. 포근하고 단단한 미소였다. 신은 죽었고 신의 사제도 그 쓸모를 다했다. 카논의 눈은 여전히 빛을 담고 있다. 미사키는 말없이 카논의 보랏빛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가봐야겠다.”


시계를 본 카논이 조금 허둥대더니 말했다. 카논은 약속 시간 전까지 잠깐 시간을 보내기 위해 카페에 왔다고 했다. 가방을 챙기고 자리에서 일어나던 카논이 문득 미사키를 보더니 입을 열었다.


“나는 말이지, 미사키쨩이 웃는 얼굴이었으면 했어. 다른 그 누구보다도.”


카논은 그 말을 남기고는 자리를 떴다. 미셸, 웃는 얼굴이야. 어렴풋한 기억 속의 목소리가 들린 듯 했다. 세상을 언제나 환하게 비추던 빛이 저물더라도 다시 낮은 찾아온다. 영원히 밤이 되지 않는 세상의 이방인인 채, 그 속에서 카논과 함께 살아가고 싶었다는 생각을 했다. 카논은 혼자서 나아가고 있었다. 천천히 걸어가며 저 멀리서, 햇빛을 등에 받으며. 눈앞에 떠오른 그 모습이 조금 눈부셔 미사키는 잠시 눈을 찡그렸다. 미사키는 다시 문제집으로 눈을 돌렸다. 얼마 남지 않은 시험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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