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nG Dream!

낮의 아이

뱅드림 히나아야

1.

한낮의 태양이 빛을 내려 숲이 선명한 초록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하늘을 가린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며 흔들리는 햇빛을 바라보던 소녀는 두 손을 모아 기도했다. 찌르듯 스친 태양이 눈부셔 소녀가 눈을 감았다 뜬 순간 높다란 나무 위에 걸터앉은 낯선 아이가 보였다.

“넌 누구야?”

“나? 히나! 히나라고 불러.”

“난 마루야마 아야! 저기 낮의 신전에서 살아.”

오랜만에 만난 또래의 아이가 반가웠는지 소녀는 부러 묻지도 않은 것까지 밝히고 배시시 웃었다.

“여기를 좋아하나보네~. 정말 즐거워보였어, 아야는.”

“나를 보고 있었어?”

“응, 계속 지켜보고 있었어.”

소녀는 조금 당황해 허둥지둥했지만 금세 고개를 끄덕였다.

“응, 정말 좋아해! 여기는 바람도 시원하고 나무들이 예쁘거든.”

“아야는 신기하네. 난 별이 좋아. 이 땅에 있는 것들은 이미 다 알아서 재미없거든~. 그렇지만 별은 지루하지도 시시하지도 않아. 별들이 빛나는 밤하늘은 아름답지.”

“히나는 밤을 좋아해?”

“응! 언니가 너무 좋아.”

“그럼 너는 밤의 사람이야?”

“아니, 그건 아닐 거야.”

“여기엔 왜 왔어?”

궁금한 것이 많은 듯 질문을 퍼붓는 소녀에게 하나하나 대답하던 히나의 신비한 녹색 눈동자가 햇빛을 머금은 것처럼 반짝였다.

“네가 나를 불렀잖아.”


2.

아주 먼 옛날 해와 달을 섬기는 나라가 있었다. 햇빛이 비치고 달빛이 머무른 곳곳에 웃음소리가 가득했고 사람들은 하늘의 축복을 노래했다. 시간이 흘러 원초의 순수가 퇴색되던 어느 날 불길한 예언이 유령처럼 떠돌았다. 낮과 밤은 서로를 몰아내며 뒤쫓는 존재, 결코 공존할 수 없어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집어삼킬 것이라고. 동요는 불길처럼 사람들 사이로 번져 본래 형제였던 자들이 반목해 서로 죽고 죽이기에 이르렀다. 평화롭던 나라는 둘로 갈라져 온전한 빛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3.

“내가?”

“응, 계속 기도했는걸.”

“으음....아 맞아!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어. 신께서 보내주신 거야?”

“뭐, 그렇다고 해둘까. 그리고 사실은.”

만면에 화색을 띠고 기뻐하는 소녀에게 히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이었다.

“내가 신이거든.”


4.

소녀는 새로 생긴 친구와 금세 친해졌다. 독특한 성정의 히나는 불경한 장난도 서슴지 않았다. 소녀는 그때마다 화들짝 놀라 나무랐지만 어린 아이들답게 금방 잊고 함께 뛰놀았다. 어떤 놀이를 해도 변변히 지는 것은 소녀였다. 술래잡기를 하면 친구보다 발이 느렸고 숨바꼭질을 하면 숨는 데 서툴렀다.

“아야는 정말 포기할 줄을 모르네~. 아무리 엉망진창으로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는걸. 그래봤자 소용없을 텐데.”

발을 헛디뎌 흙투성이가 된 소녀를 바라보던 히나가 말했다.

“몇 번이고 반짝이는 별 같아.”


5.

스스로의 살을 바쳐 형제의 피를 취하는 싸움이 이어지던 어느 날 소녀의 부모와 동생은 죽고 소녀만 가까스로 살아남았다고 했다. 폐허가 된 마을에서 홀로 울고 있던 소녀를 한 사제가 찾아내 품에 안아주었다. 낮의 아이가 된 소녀는 사제의 곁에 머물며 신의 말씀을 듣고 세상에 신의 사랑이 가득 차 있음을 배웠다.

“언제 어디에서나 웃는 얼굴로, 신의 사랑을 전해달라고 했어. 아유미 씨의 유언이야. 나는 아유미 씨와 한 약속을 꼭 지켜낼 거야.”

“그치만 아야의 가족도 아유미도 죽었고 아야는 혼자 남겨져버렸잖아? 그런데도 신을 믿어?”

소녀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던 히나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조금 우물거리는 것도 잠시일 뿐 소녀는 다시 천진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따스한 해님이 정말 좋아. 숲을 키우고 열매를 맺어주는 햇빛은 생명을 움트게 하는 손길인걸. 그런 빛을 내리는 신께서 세상을 사랑하지 않을 리 없어.”

잠시 아무 말이 없던 히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빙긋 웃었다.

“응, 아야는 정말 재미있는 아이구나!”


6.

날이 밝아 숲의 녹음이 선명해지는 시간이 되었지만 언제나 만나던 곳에 소녀는 없었다. 곧바로 히나는 뜀박질을 해 바람처럼 달려갔다. 소녀를 찾은 것은 마을 근처의 벼랑 아래였다.

피 냄새가 자욱했다. 고요한 바람이 불어오다 흩어졌고 소녀는 풀숲에 가만히 누워있었다. 내리쬔 햇빛만이 감기지 못한 눈동자에 가득 담겼다.

애초에 단명할 운명의 소녀였다. 피로 적셔진 대지 위에서 히나는 무구하게 스러진 어린 생명을 수없이 보아왔다.

신은 처음으로 상실을 알았다. 지루하다고만 여긴 세상 속에 존재하고 있었던 수많은 미지의 변수와 함께.


7.

히나는 소녀를 품에 안고 마을 외곽으로 향했다. 싸움의 함성 소리와 함께 서로를 죽고 죽이는 어른들이 있었다. 새벽녘 급습으로 시작한 전투가 마을의 반 이상을 피로 물들이고도 지난하게 이어지던 차였다. 갑작스레 나타난 또래의 시체를 안은 어린 아이를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문득 함성이 멎었다. 사람들은 칼을 휘두르고 창을 잡은 그대로 뻣뻣이 굳어 있었다. 히나만이 불쑥 뛰어올라 높은 바위 위에 걸터앉았다. 모두의 시선이 향하고 나서야 손을 튕기자 사람들의 무기가 전부 나뭇가지로 변해 있었다. 혼란 속에서 동요가 번졌다. 먼저 무릎을 꿇고 입을 연 것은 소녀를 알아본 신관장이었다.

“나의 주인이시여, 부디, 자비를.”

절박하고도 공포에 질린 목소리에 신은 이상하다는 듯이 웃었다.

“나는 자비롭고 모두를 사랑하는 신이야. 아야가 그렇게 말했거든.”

이윽고 신은 고요히 빛나는 금빛 눈동자로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고로 신의 이름으로 명한다. 낮과 밤은 이어져 함께 걸어가는 것이니 나의 아이들이여, 칼을 든 그 손으로 형제들을 안아라.”

한 순간 빛이 번쩍인 후 대지에 한 가득 꽃이 피어나 흐드러졌다.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었을 때 바위에는 틈 사이로 자라난 들풀만이 열매를 맺은 채 남아 있었다.

자급자족합니다.

참치 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

自給自足
自給自足
구독자 27

0개의 댓글

SNS 계정으로 간편하게 로그인하고 댓글을 남겨주세요.
새로운 알림이 없습니다.